2007년 《디워》가 미국 2천여 개 극장에 걸렸을 때 심형래는 감독이자 제작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작은 영화학교도, 충무로 연출부도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 무대 위에서 온몸으로 망가졌던 개그맨이었습니다.
《디워》의 완성도를 둘러싼 평가는 지금도 갈립니다. 큰 제작비, 거친 이야기, 애국심 논쟁과 흥행 기록이 한꺼번에 얽혀 있어 작품을 말하는 순간 찬반부터 나뉩니다.
하지만 평가표를 잠시 접고 그가 걸어온 순서를 따라가 보면 다른 질문이 생깁니다. 왜 코미디언이 어린이 영화의 영웅이 됐고, 왜 로봇과 공룡과 괴수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으며, 왜 한국의 이무기를 들고 미국 극장 문을 두드렸을까요?
이 글은 심형래의 모든 선택을 미화하려는 글이 아닙니다. 실패와 논란도 지우지 않습니다. 다만 결과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의 오래된 도전과, 그것이 한국 어린이 영화와 세계시장 진출사에 남긴 자리를 살펴봅니다.
1982년, 개그콘테스트 동상에서 시작하다
심형래는 1982년 제1회 KBS 개그콘테스트에서 동상을 받으며 KBS 공채 1기 개그맨으로 연예계에 들어왔습니다. 이후 《유머 일번지》의 ‘변방의 북소리’, ‘내일은 챔피언’, ‘영구야 영구야’와 《쇼 비디오 자키》의 ‘동물의 왕국’ 등에서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바보 연기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의 대표 캐릭터 ‘영구’는 느린 말투와 어수룩한 몸짓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영구 없다”라는 한마디와 표정만으로 아이와 어른을 함께 웃겼습니다. 그러나 영구는 늘 당하기만 하는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어린이 영화에서는 위기의 순간에 용기를 내고 결국 악당을 이기는 주인공이 됐습니다.
심형래는 1988년 KBS 코미디대상 대상을, 1990년에는 남자연기상을 받았습니다. 1999년에는 제17회 소파상 어린이예술부문상을 수상했습니다. 대중 코미디의 정상에 올랐고, 동시에 어린이 문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이력입니다.
| 연도 | 대표 수상·기록 |
|---|---|
| 1982년 | 제1회 KBS 개그콘테스트 동상, KBS 공채 1기 데뷔 |
| 1988년 | KBS 코미디대상 대상 |
| 1990년 | KBS 코미디대상 남자연기상 |
| 1999년 | 제17회 소파상 어린이예술부문상 |
방학 극장의 영웅, 우뢰매
1986년 김청기 감독의 《외계에서 온 우뢰매》에서 심형래는 평소에는 어수룩하지만 위기의 순간 에스퍼맨으로 변신하는 ‘형래’를 연기했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이 작품을 액션·코미디·SF·아동·판타지 장르로 분류합니다.
당시 어린이에게 《우뢰매》는 단순한 영화 한 편이 아니었습니다. 영화관에서 책받침을 받고, 장난감으로 우뢰매를 다시 만나고, 친구들과 에스퍼맨 흉내를 내는 하나의 놀이문화였습니다. 국립국어원 자료에 따르면 1편은 200만 관객을 모았고, 시리즈는 1993년 9편 《무적의 파이터 우뢰매》까지 이어졌습니다.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분장과 특수효과가 투박하고 이야기도 단순합니다. 그러나 당시 한국 어린이에게는 우리말로 웃고, 한국 배우가 변신하고, 한국이 만든 로봇과 괴물이 활약하는 드문 극장 경험이었습니다.
영구와 땡칠이, 어린이 영화의 빈자리를 채우다
1989년 《영구와 땡칠이》는 TV 속 영구를 스크린의 주인공으로 옮겼습니다. 바보 영구와 충직한 개 땡칠이가 귀신과 악당을 상대하는 이야기는 코미디와 가벼운 공포, 모험을 한데 섞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Korean Film Biz Zone은 심형래의 초기 영화들이 당시 언론과 평단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어린이 관객의 꾸준한 지지를 받았다고 설명합니다. 《영구와 땡칠이》는 서울에서 6만4천 명을 동원했고, 후속편 세 편으로 이어졌습니다.
성인 중심으로 기록되는 한국영화사에서 어린이 영화는 종종 작게 다뤄집니다. 그러나 《우뢰매》와 《영구와 땡칠이》는 방학마다 어린이를 극장으로 불렀고, 우리도 로봇과 괴수와 변신 영웅을 만들 수 있다는 상상력을 보여줬습니다. 완성도의 한계와 별개로 한 세대의 영화 기억을 만든 족적입니다.
고무 괴수에서 컴퓨터그래픽으로
심형래가 어린이 영화에서 반복해서 다룬 것은 로봇, 공룡, 괴수와 영웅이었습니다. 그는 1993년 영화사 영구아트를 세우고 배우를 넘어 제작과 특수효과 영역으로 이동했습니다.
《티라노의 발톱》과 《파워킹》 등을 거쳐 1999년에는 한국의 고전 괴수 ‘용가리’를 영어 영화로 다시 만들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용가리》를 당시 한국영화 사상 최대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이자, 서양 배우들이 출연한 한국 영화계 초기 영어 장편 가운데 하나로 설명합니다.
《용가리》는 흥행과 완성도에서 혹독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괴수의 움직임, 미니어처, 폭발 장면과 컴퓨터그래픽을 자체적으로 만들려는 경험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축적한 노하우가 다음 프로젝트 《디워》로 이어졌습니다.
| 시기 | 심형래의 변화 | 대표 흔적 |
|---|---|---|
| 1982년 | 개그맨 데뷔 | KBS 공채 1기 |
| 1986년 | 어린이 SF 영웅으로 확장 | 《외계에서 온 우뢰매》 에스퍼맨 |
| 1989년 이후 | 영구 캐릭터의 영화화 |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 |
| 1993년 이후 | 제작·특수효과에 도전 | 영구아트 설립 |
| 1999년 | 영어 괴수영화 제작 | 《용가리》 |
| 2007년 | 세계시장용 대작 도전 | 《디워》 |
디워, 작품 평가 이전에 봐야 할 최초의 시도
《디워》는 한국의 이무기 설화와 여의주를 소재로 삼고, 미국 배우들이 영어로 연기하며, 로스앤젤레스 도심에서 괴수 군단과 현대 병기가 충돌하는 영화였습니다. 한국 회사가 주도해 세계시장을 목표로 만든 괴수 블록버스터였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디워》를 한국에서 제작된 영화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에서 와이드 릴리즈된 작품으로 기록합니다. 북미에서는 The Numbers 기준 최대 2,275개 극장에서 상영됐습니다.
미국 흥행의 손익만 따지면 성공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이야기와 연기, 연출에 대한 비판도 컸습니다. 그러나 당시 비영어권 한국 영화가 수천 개 극장에 동시에 걸리는 유통 경로를 실제로 밟았다는 사실은 별개의 산업적 기록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2024년 한국 괴수 콘텐츠를 돌아보며, 《디워》가 미국 배우와 한국 설화를 결합한 세계시장용 프로젝트였고 《설국열차》나 글로벌 스트리밍 시대의 한국 제작물보다 앞선 시도였다고 평가했습니다.
‘잘 만들었느냐’와 ‘누구도 가보지 않은 유통 규모를 먼저 시도했느냐’는 서로 다른 질문입니다. 작품의 약점을 비판하면서도 최초의 시도가 가진 의미를 함께 기록할 수 있습니다.
성공과 실패 사이에서 남은 것
큰 꿈이 큰 완성도로 그대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영구아트의 경영 실패와 임금 체불 등 이후의 문제도 ‘도전’이라는 말로 덮을 수 없습니다. 한 프로젝트의 산업적 의미와 그 과정에서 발생한 책임은 함께 봐야 합니다.
그럼에도 어린이 관객을 향해 바보 영웅을 연기하던 개그맨이 로봇과 공룡을 만들고, 자체 제작사를 세워 영어 괴수영화를 제작했으며, 한국 설화를 들고 미국 2천여 개 극장의 문을 두드렸다는 순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금은 한국 제작물이 세계 스트리밍 순위에 오르는 일이 낯설지 않습니다. 그러나 2007년에는 참고할 성공 사례조차 거의 없었습니다. 《디워》의 시도는 성공 공식이 아니라 시행착오에 가까웠지만, 한국 콘텐츠가 세계시장을 상상하던 초기의 거친 흔적이었습니다.
19년 뒤 다시 도착한 한국의 용
2026년 《디워》는 오스트리아·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 유럽 7개국 넷플릭스 영화 순위에서 2위까지 올랐습니다. 유럽 역주행이 과거 논쟁의 승패를 가려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때 너무 앞서가거나 너무 거칠었다고 여겨졌던 시도가 19년 뒤 전혀 다른 관객 앞에 다시 도착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심형래의 길을 돌아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결과만 보면 성공과 실패로 나뉘지만, 그 사이에는 한국 어린이 영화의 한 시대와 국내 특수효과 산업의 시행착오, 세계시장에 먼저 문을 두드린 기록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댓글 남기기